dukudk

왕원왕린

샤2 2017. 9. 22. 01:39
-흐콰는 개뿔..OTL
-본들마와 되게 다를 예정.
-단이 원 바라기 아님 주의.


*단이 처소


단이는 손수건에 얼굴을 묻고 훌쩍이고 있다. 옆에서 어쩔 줄 모르는 진관과 달리 마주 앉아 턱을 괴고 있던 원은 난데없이 뜬금없는 소리나 했다.

-넌 참 우는 것도 귀여워.

손수건 사이로 세모진 눈이 튀어오른다.

-제가 여직 다섯 살인 줄 아셔요?
-..안 먹히네. 그땐 직방이었는데.

아쉬운 시선이 단의 발치로 흐른다.

-어. 노래기다.
-악!!!

대경실색한 단이 화들짝 진관에게 안겨든다. 순간 숨을 멈춘 진관은 차렷자세로 빳빳해졌다. 김이라도 날 듯 시뻘개진 낯이 좀 있으면 터질 참이다. 원은 피식 소리내 웃고 말았다. 그제야 속은 줄 안 단이 진관을 놓고 빽 소리를 지른다.

-저하!!
-분명 있었는데. 잘못 봤나?

눈물은 멈췄는데 눈고리가 찢어지겠다. 원은 너스레를 거두며 빙긋이 웃었다.

-너 우는 거 싫어 그랬지.
-....

어쩐지 더 굳는 낯이 딱 지 오라비다. 원은 순순히 두 손을 들어보였다.

-알았다. 다신 안 그러마. 담부턴 울든 말든
-입술이 왜 그러세요?

원은 별 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인다.

-넘어졌어.

빤하게 원을 보던 단이 길게 한숨을 뱉으며 자리에 앉는다. 

-변명도 나눠 쓰십니까?

...린이 먼저 써먹었군. 큼, 낮게 목을 울린 원이 유밀과를 내민다.

-선물.
-다섯 살 아니라니까요.
-그래서 싫어?
-...이런 건 뭐하러 사오셔요..

말과는 달리 조금 밝아진 낯이 원의 눈엔 여전히 처음 봤던 다섯 살 그대로다. 원은 다정히 미소하다 아직도 목이 붉은 진관을 힐끔이곤 의자에 기댔다.

-진관이 샀다.

갑자기 호명당한 진관이 휘둥그래진다.

-니가 유밀과 좋아하는 건 어찌 알았는지 꼭 사다주고 싶다더라.

뭐라 말도 못하고 뻐끔대는 진관에게 단의 음성이 봄바람처럼 분다.

-정말 좋아하는 것인데.. 고맙다.

부드럽게 휘는 눈에 넋이 빠진 것도 모르고 단은 진관의 손을 천진하게 잡아끈다.

-같이 먹자. 맛있어, 이거.

진관은 멍하니 자기 손을 내려다보다 황급히 물러난다. 닿은 곳이 불붙은 듯하다. 도로 붉어져 나가있겠다 줄행랑을 치는 진관을 보며 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찌 저리지?
-..남매가 쌍으로 눈치가 없으니..

혼잣말치곤 큰소리다. 단은 입술을 삐죽였다.

-제가 뭘요?
-들었어?
-들으라고 하신 말씀 아니셔요?
-정정. 누이 쪽은 눈치가 있네.

단은 밉지 않게 눈을 흘기다 웃어버린다. 그새 핼쓱해진 낯에 원의 미소가 흐리게 가라앉았다.

-.. 많이 아팠니.
-...보내주신 약재 덕분에 금세 나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저하.
-..어마마마가 하신 일.. 미안하다.
-...아무한테나 사과하시면 안되잖아요.
-단이 니가 왜 아무나야. 내 누인데.

애틋한 시선 사이로 청량한 목소리가 끼어든다.

-제 누입니다.

작은 함을 내려놓는 린에게 원이 짐짓 불퉁거린다.

-치사하긴. 근데 이건 뭐냐?

린은 잠깐 원의 눈치를 살피고 함을 열었다. 알록달록한 유밀과가 정갈히 담겨 있다. 남은 것을 수습해 다른 함에 옮겨온 것이다.

-또 사왔어?
-...형님께서...

원은 설핏 굳으려는 낯을 펴며 단이 쪽으로 함을 밀었다.

-오라비는 오라비네.

단은 붉어진 눈으로 괜히 불퉁거린다.

-...누가 이런 거 사다 달랬나..
-그래도 그러면 안 되지. 니 오라비가 너 생각해서 사온 것인데.

그제야 린도 한 마디 거든다.

-일전에 다퉈서 그래. 취하기도 하셨고.
-...요새 만날 술이셔요. 혼사가 깨져 맘이 많이 상하셨는지.. 속 버리면 어쩌시려고..

린의 어깨가 작게 굳는다. 원은 린을 힐끗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되겠다. 나도 유밀과 사와야지. 가자, 린아.

단은 눈고리가 쳐져 따라 일어난다.

-또 멀리 가시나 봅니다.
-시전 코 앞인데?
-그 핑계 너무 많이 써먹으셨어요.

원은 놀란 척 린을 본다.

-니 누이 언제 이렇게 큰 거야?
-그러게요.

단은 한숨을 지으며 제 손바닥만한 낭을 가져온다. 푸른 바탕에 보랏빛 나비가 수놓아진 것이다.

-비상용 약재를 넣었습니다. 연고도 있으니 바르셔요, 두 분 다.

원과 린은 각자 자기 상처를 가리다 손을 내린다. 원은 작게 헛기침을 하고 낭에 턱짓을 했다.

-근데 어찌 하나야. 난 오라비 아니다 이거냐?
-만날 붙어다니시는데 두 개가 왜 필요합니까?

원은 린의 귀에 다 들리게 속삭였다.

-쟤 지금 나한테 성질내는 거지?
-얼른 피해야겠습니다.

못 말린다는 듯 웃은 단이 원에게 낭을 건넨다.

-알겠습니다. 저하 가지셔요.

원은 린에게 혀를 내밀고 낭을 챙겨든다. 단은 소리내 웃다가 린과 눈을 맞췄다.

-...다녀오세요.
-밥 거르지 말고.
-약 꼭 바르시구요.
-...아프지 말고.
-또 다쳐 오시면.. 정말 화낼 겁니다?
-..조심하마.

둘을 지켜보던 원이 눈을 돌린다. 어쩐지 목이 막혔다.

**

-두타산으로 갔겠지. 거기 말곤 갈 데 없잖아.
-오고 가고 최소 나흘은 걸릴 텐데요.
-이레.

따르던 장의와 진관도 놀랄 일수다. 방랑벽이 일상인 원이지만 닷새를 넘긴 적은 없었다. 린은 말을 끌고 앞서 가는 원을 멈춰 세운다.

-왜.
-...원성전에서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원은 린을 마주 본다.
'다과회에서 세자빈을 간택할 거에요. 칠 일 훕니다.'

-저하.
-나중에.

린은 다시 묻지 못하고 입술만 깨문다. 원의 미간이 작게 찌푸려졌다.

-입술 상한다.

흔들리는 눈동자를 피한 원이 장의, 진관을 돌아봤다.

-니들은 여기 있어. 진관은 단이 들여다보고.
-안 됩니다.

즉각적인 장의의 답에 원이 놀란 척 입을 가린다.

-너도 단이를...
-예?
-진관이 단이 보는 거 안된다며.

장의가 푹 한숨을 내쉰다. 진관도 걱정하는 빛이 역력하다. 원은 피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검을 달라는 뜻이다. 장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어서.
-..멀리 있겠습니다.
-오늘은 명하기 싫은데.

이렇게까지 말하니 도리가 없다. 장의는 하는 수 없이 검을 건네며 슬며시 린에게 눈동자를 굴렸다.

-봐도 소용없어. 못 말릴 거 아니까.
-저만이라도 따르면
-이레는 안 돼. 따르는 것도, 찾아오는 것도.
-지금 가시면 산중에서 밤을
-알아서 한다.

장의와 진관을 차례로 끊은 원이 말에 올라타 박차를 가한다. 도성문을 빠져 나가는 원의 뒤에서 장의는 어둡게 린에게 다가섰다.

-...원성전에서 나오신 후로 심기가 편치 못하십니다.

린은 한숨을 삼키며 말에 올랐다.

-정말 이레나 대기합니까.

초조히 묻는 진관에게 작게 끄덕인 린이 원이 간 방향으로 말을 달린다. 흙먼지가 어지러이 흩날렸다.

**

기녀 월은 문을 닫으며 몸서리를 친다. 평소에도 비위 맞추기 어려웠지만 오늘은 정말 유난하다.

-왕족이면 단가.
-힘들었느냐.

월이 소스라쳐 허릴 숙인다.

-요..용서하십시오. 이년이 잠시 실성을 하여..

송인은 넉넉히 웃으며 월의 등을 토닥인다.

-요사이 힘든 일이 많아 그러신 것이니 이해해다오.
-이해라니요. 과분한 말씀을..
-괜한 말이 퍼지지 않게 부탁한다.
-당연하지요. 당연합니다.
-고맙구나. 이건 감사의 표시라 여겨다오.

눈앞에 나타난 비녀는 화색이 돌 만큼 값비싼 것이다. 비녀를 품에 안은 월은 복도 끝으로 총총 사라졌다. 송인은 딴사람처럼 차가운 낯으로 문을 민다.
방 안 풍경은 가관이었다. 얼마나 마신 건지 지독한 술냄새에 안주는 죄다 바닥에 구르고 곳곳에 깨진 사기조각이며.. 무엇보다 한심한 것은 병째 술을 들이켜고 있는 저 왕전이다. 다 풀린 눈에 반쯤 벗겨진 도포가 저잣거리 난봉꾼 꼴이 따로 없으니.. 송인은 입 안으로 혀를 차며 술병을 잡았다.

-오. 당후관. 내 사람 당후관이 왔군.
-술이 과하십니다. 그만하시지요.
-내게도 내 사람이 있어. 그것도 모르고 그 잡종이 감히 내게!
-..세자를 만나셨습니까.
-내 집, 내 누이의 처소에서 내 동생들이 제 것인양 설쳐대더군. 그 미련한 것들은 이용당하는 줄도 모르고 그 잡종 편에 서서 나를.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내게.. ..모자란 것들. 괘씸한 것들. 그 잡종을 어찌 그리 몰라. 어찌 그리 모르고 내게 대서! 내가 누구인데. 내가 무엇이 될 것인데!

두서없는 넋두리가 왕전만큼 초라하고 지루하다. 아우만은 못하나 처음에는 제법 총기도 있었는데. 갈수록 실망만 더한다.
끝없이 어어지던 술주정은 이내 얕은 숨소리로 변했다. 의자에 앉아 뻑뻑한 눈두덩이를 문지르던 송인은 문득 헛웃음을 짓는다. 이런 자를 주군이라 부르며 나는 대체 무얼 하고 있는가. 순혈의 세자를 세워 나라를 구하겠다는 결심이, 해서 그 누구도 나처럼 소중한 이를 잃게 만들지 않겠다는 각오가 시작이긴 했는데.. 송인은 입술을 비튼다. 이제와 무슨 상념인가. 사람의 도리도, 인간의 정리도 모두 버리고 여기까지 왔다. 악귀같은 원나라에 맞서기 위해 악귀가 되길 마다치 않았다. 은산의 어미를 죽이고 주군이라 부르는 자의 누이를 이용하고 살을 맞댄 여인을 왕에게 보내고..

'내 결정은 바뀌지 않습니다.'

..단단한 눈이었다. 세상 풍파를 모르는 순진한 눈이기도 했다. ..그래. 몰라 그런 것이다. 이 땅이 어떤 지옥인지, 이 지옥을 만든 자들이 누구인지. 진실에 눈감고 늑대의 자식을 믿고 있을 뿐이다. 그 어리석은 믿음이 깨진다면. 아니. 처음부터 그 믿음이 세자의 것이 아니었다면... 송인은 술병을 끌어와 목을 축인다. 이상한 열기가 뱃속을 뒤틀었다.

**

진관의 염려는 적중하여 산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다. 린은 혼자 분주하다.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피우고 땅을 골라 잘 자리를 만들고.. 왕족이란 신분이 무색하게 익숙한 솜씨다. 원은 물끄러미 린을 보다 고개를 들었다. 칠흙같은 밤하늘에 별이 촘촘히도 박혀있다. 생각을 지우는 풍경이다.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네요, 이건.

어느 새 옆에 앉은 린이 시선을 나란히 한다. 원은 린의 옆얼굴로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그러게.

참 오래도 봐왔다. 한시라도 떨어지면 큰 일이라도 나는 양 붙어다녔다. 그런데도 이렇게 볼 때마다, 하루하루 점점 더 아깝고 아쉽다.

-...이제 물어도 됩니까.

평생 모르길 바랐고 당장이라도 알아주길 바랐다. 내가 너를 어찌 생각하는지. 네가 내게 무엇인지.. 원은 무심코 입안을 씹다가 신음성을 낸다. 낮에 원성전에서 짓씹은 데였다.

-다치셨습니까?

입가에 닿은 손끝이 차갑다. 원은 린의 손목을 잡아내렸다.

-됐어.
-손 닦았습니다.
-누가 뭐래냐.

더 살피지도 못하게 고갤 돌려버린다. 린은 눈으로 원의 얼굴을 더듬었다.

-다친 데 없어. 그냥 성질나서 입 좀 씹은 거야.
-....왜요.
-니 형.

린의 눈가가 조금 처진다.

-...취중이라 그런 겁니다.
-내가 단이냐.

린은 입을 다물고 약통을 꺼낸다. 원이 준 연고였다.

-직접 바르십시오.
-안쪽이야.
-그냥 성질을 내시지 왜 멀쩡한 데를 씹습니까?
-말려놓고 말.. 아야..
-얼마나 다치셨는데요. 좀 봐요.
-아 좀. 귀찮다.

원은 다시 손을 밀어내다 드물게 속상한 티가  드러난 눈동자에 피식 웃고 만다.

-웃음이 나십니까?
-역지사지. 내가 얼마나 속이 터졌을지 이제 알겠지?
-복수하십니까?
-이 정도로? 넌 참 날 모른다.
-유치하신 건 알겠습니다.
-그래. 나 유치하다. 어쩔래?

어린애 같은 말다툼 끝에 동시에 웃음이 터진다. 원은 환한 웃음을 눈에 담다 허리춤에서 호리병을 꺼냈다. 린의 눈에도 익은 것이다.

-산이 아가씨 거네요.
-걔가 퍽도 술을 줬겠다. 하나 따라 만든 거야. 이렇게 쓸 데가 있을 줄 알고. 이런 걸 선견지명이라 하지.

린은 술을 마시려는 원을 얼른 잡아 말린다.

-상처 입 안이라면서요.
-그러니까. 소독해야지.
-덧납니다.
-안 마시면 더 덧나.
-안됩니다.
-아 진짜 잔소리.

린을 털어낸 원이 재빨리 술을 들이켠다.

-아 따거!
-거 보십시요.

술병을 뺏어 아예 제 허리춤에 넣는 린이다. 원은 아픈 델 문지르며 눈을 흘겼다.

-장수보다 더한 놈.
-김내관이 고생입니다.
-뭔 고생. 내가 얼마나 잘해주는데.
-그런 말 하시면서 안 찔립니까?
-찔리지.

못 말린다는 듯 웃음이 터진다. 저리 웃는 게 좋았다. 그래서 더 헛소리를 하고 애처럼 억지를 부리기도 하고.. 원은 훌쩍 린의 무릎을 베고 눕는다. 동그란 눈이 아래서 봐도 참 맑았다.

-잠깐 빌리자.
-....어리광이 느셨습니다.

간신히 한 마디 꺼낸 줄 아는지 모르는 지 원은 태연히 말을 잇는다.

-예전에 니네 집에 갔는데 단이가 이러고 있더라. 니 무릎을 베고 뭔 얘기를 하는지 재잘재잘. 그날 나 장수한테 무릎 좀 내달라고 할 뻔 했잖아. 안 그러길 다행이지. 이 세자가 미쳤구나 했을 거 아냐. 그치?

어린 날 린의 집에 다녀간 원은 종종 어두운 낯을 했다. 수사공이 린의 옷을 챙겨줄 때나 단이 린의 품에 안길 때나.. 그땐 이유를 몰랐다. 그렇게 무심했다. 린은 겨우 입고리를 올린다.

-해보니 좋으십니까.
-좋네. 일어나기 싫을 만큼.

이대로 평생 살고 싶을 만큼. 원은 품에서 무명을 꺼내 린에게 안긴다.

-무릎값이다.

무명을 펼쳐본 린이 피식 웃었다.

-제 무릎이 한 닢입니까.
-귀한 거야, 그거.

원이 엽전에 얽힌 얘기를 풀어놓는다. 아이와 만두와 산.. 린은 맨주먹을 쥐었다. 산은 아니라 했지만 린의 눈에 원의 마음은 여전히 같아 보인다. 옥사에서 산을 빼낸 밤이나 날이 새길 기다리지 못하고 말을 달린 오늘이나.

-엄청 귀하지? 나중에 거스름돈 받을 거다.

어쩌면 아가씨의 것일지 모르지만.. 린은 엽전을 꼭 손에 쥔다. 여기까지만. 여기까지만..

-...그만 주무십시요. 내일도 반나절은 가야 합니다.

원은 가만히 린을 올려다본다. 염려를 지우지 못한 눈이다. 오는 내내 그랬을 것이다. 무슨 일인가, 무슨 일인가.. 원은 굳게 입을 다문다. 세자빈을 맞게 됐다 하면. 해서 이 녀석이 축하라도 하면. 지금 당장은 참을 자신이 없었다. 멱살을 쥐고 패악을 부리거나 발치에 엎드려 빌기라도 하거나... 어느 쪽이든 최악일 테지.
원은 엽전을 품에 넣는 린을 비껴 쏟아질 듯한 별에 대고 바랐다. 이 밤이 끝나지 않기를.


-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