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udk
최윤화평
샤2
2018. 11. 9. 21:16
*손게 5회 中
빙의니 귀신이니 하면 코웃음 정도는 양반이었다. 물벼락이나 소금세례, 입술도 부지기수로 터져봤고 칼부림도 몇 번 날 뻔했다. 팔뚝이 찢기고 머리가 터져 앉아 있으면 육광이 달려와 바락 핏대를 세웠다. '댁네 누구 손 들었다 소리 하지 말랬지?! 또 정신병원 문턱까지 갈래?!!' 정신병원이 유치장이 되기도 하고 저승이 되기도 하고, 암튼 이름만 바꿔 때마다 윽박이었지만 화평이 하는 짓은 별반 변하지 못했다. '최신부가 박일도야.'로 시작해 '동생을 찾아간다고 했어. 니가 위험하다고.'로 끝낸 것처럼.
-다시는 연락하지 마십시요.
화평은 곧은 등을 멀거니 바라본다. 한 대 치고 싶은 얼굴을 하고, 그래도 사제라고 끝까지 주먹질은 안했다. 손끝이 하얘지도록 주먹만 쥐고 있었다. 고작, 그만큼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악을 쓰고 칼을 휘둘렀는데, 성경 읽고 불경 외는 사람들도 다 그러던데, 신부님이야말로 내게 그래도 되는데.. 화평은 얼른 고개를 털어낸다. 악은 약한 마음을 먹고 산다. 깊게 곱씹어봐야 그 귀신놈 좋은 짓이란 뜻이다. 그 꼴은 못보지. 그렇게는 안 두지, 내가. 화평은 지겹게도 반복한 다짐을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삼킨다. 씁쓸한 맛이 났다.
**
겨울만 있는 세상에 사는 사람이 여름만 있는 세상에 10초간 머무는 것. 첫인상이라는 게 그렇다. 영 틀리진 않지만 결코 다 알 수는 없다. 그래서 대책없고 뻔뻔해뵈는 저 남자에게도 얼마쯤 여지는 뒀는데.
-주먹 한 번 되게 맵네.
그 경찰이 강형사의 어머니였다. 평정은 이미 애저녁에, '최신부가 박일도야.'부터 깨져 있었지만, 형의 유골에 윤화평 정체에 강형사 어머니 얘기까지 알고 나니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해묵은 죄가 발목을 베어버린 것 같았다.
그런데 저 남자는 대체 뭔가. 다 알고 있었으면서 어릴 때 형을 딱 한 번 봤다고, 하나도 미안하지 않은 얼굴로 강형사 어머니는 자기 탓이라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다. 아니. 아무렇지도 않다. 터진 입가를 훔쳐내고 차뒤꽁무니에 저런 소리나 지껄이며, 윤화평은 멀쩡했다. 역시 그런 인간이었다. 윤은 어금니를 물며 돌아선다.
-어디 가.
어이. 신부님. 재차 부르는 소리를 무시하니 앞을 가로막는다. 윤은 싸늘한 표정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데려다줄게. 차 없잖아.
-......
-여기 이 시간에 콜도 잘 안 들어와. 집까지 걸어갈 거야?
-......
-..알았다, 알았어. 기다려 봐, 그럼.
핸드폰을 꺼내들고 한 번만, 두 배, 대신 뛰어줄게, 실실거리는 걸 보고 있자니 목울대가 울렁거린다. 윤은 화평을 등지고 빠르게 걸었다. 또 불러 세우면 이번에야말로 참지 못할 것 같았다. 주먹을 내리꽂고 발길질을 하고, 네 탓이라고, 너 때문이라고, 니가 죽었어야 한다고...
딱!
그 소리에 겨우 생각이 멈춘다. 지금 내가 무슨.. 윤은 길게 심호흡을 하고 뒤를 돌아봤다. 눈이 마주치자 어린 아이 셋이 주춤주춤 물러난다. 화평은 허리를 숙인 채 이마를 짚고 있고 그 옆으로 주먹 반만한 돌멩이가.. 윤은 저도 모르게 발을 굴렀다.
-너희들!
튀어나가려는 몸을 잡아챈 건 화평이었다. 아이고, 부러 소릴 내며 허릴 세우는데 피가 뚝뚝 떨어진다. 화평은 상처를 누르며 잔뜩 겁먹은 아이들을 쭉 훑어봤다.
-사람한테 돌 던지면 안 돼, 이 녀석들아.
-.....
-니들 집 어디야. 왜 밤에 돌아
-사, 사람 아니랬어! 귀신.. 귀신이랬어! 부모 잡아먹은 귀신!
쩡 얼어붙는 윤과 달리 화평은 세상 귀찮다는 듯 피묻은 손을 앞으로 내보인다.
-귀신이 피나냐?
-...그...그럴 수도 있지? 몸은 사람이잖아!
방금 빽 내지른 놈이다. 걔 중 한 뼘 크다고 오기를 부리나본데. 화평은 은근히 목소릴 낮췄다.
-모르나본데 귀신 피는 퍼래. 아아주 시퍼렇다고. 보여줄까?
안 그래도 울망하던 애들이 새하얗게 질린다. 화평은 휘 손을 내저었다.
-가. 밤늦게 싸돌아다니지 말고. 그리고 니들 또 이런 짓하면 경찰한테 다 이른다. 얼굴 외웠어.
바들바들 버티고 있더니 경찰소리에 줄행랑이다. 귀신보단 경찰인가. ..그런 거 같기도 하고. 화평은 눈가로 새어드는 피를 훔치며 고개를 돌렸다. 도망가는 아이들을 보고 선 눈이 딱딱하다. ..하필 부모 잡아먹었단 소린 해서.
-..담력놀이 같은 거야. 밤에 무덤 가고 그런 거 있잖아. 내 소문이 진짠지 궁금하기도 했을 거고.
-......
-그나저나 어쩌냐. 두 배를 줘도 싫다는데. 그냥 모르는 놈이다 생각하고... 아니다. 그 아저씬 올 지도 모르겠네. 잠깐
-피나 닦아요.
꼭 저같은 것이 내밀어진다. 튀어나온데 없이 사각으로 반듯한 흰 손수건.
-됐어. 많이 다치지도 않았
말을 끊고 쥐어박듯 이마를 누르는 손에 아 소리가 절로 나온다. 아프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해서 쳐다보자 예의 그 무뚝뚝한 얼굴로 한다는 말이,
-다행이네요. 아픈 건 느껴서.
얼굴과 달리 날이 서있다. 화평은 슬그머니 손수건을 잡았다.
-좀 있음 멈추는데..
윤은 별 대꾸없이 손을 떼고 논두렁으로 눈을 돌린다. 딱소리가 났을 때 이 남자가 죽었으면, 까지 갔었다. 돌 던진 아이들이 꼭 제 얼굴이었다. 제 얼굴로 그 말을 했다. 부모 잡아먹은. 그게 어떤 말인지 윤은 질리도록 알고 있다. 말을 빼앗고 표정을 빼앗고 종당엔 손목을...
-최윤.
어깨를 짚는 손에 버뜩 정신을 차린다. 걱정스런 얼굴이 코앞이다. 윤은 손을 뿌리치고 걸음을 물렸다.
-...애들 소리야.
가만히 건네는 목소리가 한결 조심스럽다.
-너무 맘에 담지 말라고. 알잖아. 손은 약한 틈으로 온다는 거. ..한 귀로 흘려. 흘리고 말어.
양신부님과 똑같은 말이다. 윤아.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라. 생각이 길면 길을 잃어. 마음을 굳게 먹어야지. 괜찮다. 다 괜찮을 거야.. 들쭉날쭉했던 마음이 이제야 조금 가라앉는다.
-정 그럼 진짜 혼구녕이라도 낼까? 여기 손바닥만해서 찾으면 금방 찾는데.
금세 다시 주절대는 화평은 여전히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 길영에게 얻어터질 때처럼, 멱살을 잡히고 자길 원망하라고 했을 때처럼, 돌을 얻어맞고 머리가 터져서도.. 손수건이 온통 붉다.
-...꿰매야겠네요.
-에이. 건 심하다. 뭘 또 입까지 꼬매래. 안 그래도 오줌싸게 생긴 것들을.
-.....
-아이고. 알어 알어. 이거, 상처. 노려보기는.
-....차는요.
-어?
두 번 말하기 싫다는 듯 쳐다만 보는 윤에 손가락이 절로 뻗친다.
-저기 위에. 할아버지 집에.. ..진짜 데려다줘도 된다고?
-운전 내가 합니다.
그러고 먼저 걸어간다. 화평은 잠깐 멍해졌다. 데려다준다고 부득불 우기긴 했지만 험한 꼴까지 뵈주고 괜히 잡았다 싶었는데.. ..뭐야. 가잘 때 가지. 그랬음 안 그래도 길었을 하루에 그런 말까진 안 얹었잖아. 운전도 못하는 줄 알았더니.. 괜히 투덜거려봐도 맘이 영 이상하다. ..근데 왜 이상한 거지..
-안 갑니까.
멈춰서 직시하는 시선에 이제야 상처가 욱신거리는 듯했다.
**최윤화평. 모야 이 찰떡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