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udk

대영시진/ 명주모연

샤2 2016. 4. 8. 00:17
서울. 술집


미닫이 문을 연 시진의 입이 크게 벌어진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눈 앞의 광경이 정도 이상으로 예상 밖이라.

-안 오신다면서 오셨습니다?

특유의 비아냥거림을 생기있게 시전하는 저 윤명주의 전화를 받고도 여유만만했던 건 명주의 협박이 우스워서가 아니라 서대영을 알아서였다. 말로는 이겨도 술로는 절대 못 이기는 게 서대영이다, 라는 다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확신. 근데 이십 시 십오분 현재.

-윤중위님. 중대장님 목소리 들리는 거 같지 않습... 어. 저 문 중대장님 닮지 않았슴까. 되게 이쁜 거 같습니다.

...확신은 얼어죽을. 시진은 다 풀린 눈으로 헤실거리는 대영을 위아래로 훑어보다 이 일의 원흉에게 고개를 돌린다. 

-서상사 술 아니라 약 먹였냐?
-그렇게까지 약 오르진 않았습니다.
-대체 얼마를 먹인 거야?
-스무 병부턴 먹인 게 아니라 본인이 마신 겁니다.
-혼자 이걸 다?!
-제 입은 말할 때만 쓰는 줄 아십니까? 같이 마셨습니다. 서상사 생각보다 너무 약하지 말입니다.
-...너 진짜 좀 무서울라 그런다. 어떻게 서대영을 술로 이기냐.
-저한텐 술이나 물이나 거든요.
-...간이식 받을 일 생기면 잘 부탁한다.
-간! 간 좋습니다. 허파도 시키십쇼.
 
반짝 하는 말에 이 와중에도 웃음이 터지는 시진이다. 명주는 소주가 찰랑이는 맥주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혀를 찼다.

-그렇게 좋습니까?
-그러게나 말이다. 3박 4일 휴가 첫 날에 옛애인하고 술이나 마시는 사람 뭐 이쁘다고. 나도 참 배알없어.
-저도요.

불쑥 나타난 모연에 명주는 술잔을 든 채로 굳어버린다. 시진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명색이 알파팀 팀장이 백업도 없이 적진에 왔을까.

-일찍 왔네요?
-당직 바꿨어요. 오늘 칼 들면 사람 못 살릴 것 같아서요.

꿀꺽.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킨 명주는 얼른 잔부터 내려 놓는다. 저거 진심이다.

-전우애가 뉘집 앤가 했더니 이런 애였네요.
-전우의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선배!
-어. 윤명주 강선생한테 소리치는데요?
-원래 겁이 없어요 쟤가.
-...선배. 그게 아니구요..
-사장님! 여기 소주 추가요!

쿵쾅거리며 거침없이 들어선 모연이 자리에 앉자마자 잔을 잡자 입이 백 개라도 할 말 없는 명주가 반사적으로 손목을 잡아챈다. 근데 돌아보는 눈빛이, 이야... 시진은 대영 옆에 앉으며 감탄을 뱉었다.

-강선생 이직할 생각 없습니까? 알파팀에 자리 비워 둘 테니 심사숙고 해보시죠.
-이 여자 자르면 적극적으로 고려해볼게요.
-이 남자 자르고 꼭 모시겠습니다.

명주는 빠드득 이를 갈며 시진을 노려본다.

-놀자는데 죽자고 덤빕니까?
-서상사 급성알콜중독으로 실려가기 전에 여기 딱 와서 다시는 강선배랑 나 놀리지 않겠다고 맹세하십시오, 의 어디가 놀자는 거야 선전포고지. 그리고. 내가 언제 놀렸냐? 놀리려고 했지.
-시도 자체를 관두란 말입!! 선배!!

말싸움에 치중한 사이 왼손으로 원샷하고 빈잔을 채우고 있는 모연을 발견하고 명주가 사색이 돼서 잔을 뺐는다.

-내가 술 마시지 말라고!,
-넌 되고 난 안 되고 말 돼?
-...들으신 대로 사정이,
-몇 병 마셨어.
-....약...간?
-수치를 대, 수치를.
-..........조......금?
-사장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신 안 그러겠습니다. 네?

천하의 윤명주를 알아서 기게 만들다니. 진심으로 탐나는 인재지만 영입문제는 뒤로. 당장은 빈 소주병을 탈탈 털고 있는 이 서대영이 먼저다.

-이 양반이 윤명주 무서운 줄 모르고 쪼르르 어딜 혼자 나와서. 서상사. 서상사. 정신 좀 차려 보십시오.
-....어어? 저기 말입니다. 유시진 대위 닮았다는 소리 들어본 적 없습니까?
-얼씨구?
-유시진 모릅니까? 어어. 어떻게 모르지?

갔다. 맛이 완전히 가버렸다. 시진은 한숨을 뱉으며 대영의 팔을 어깨에 두른다.

-강선생. 전투 중에 미안한데 전 이 남자 좀 갖다 버려야겠습니다.
-그래 보이네요. 미안해요. 대신.
-선배가 왜 사괄 합니!
-지금이 그거 따질 타이밍이 맞을까?
-......
-가세요. 나중에 정식으로 밥 한 번 살게요.
-둘이 연락을 왜 합니!
-누구 덕에 전우가 됐거든. 그리고. 너 타이밍 계속 틀리거든?

시진은 웃음을 참으며 방을 나섰다. 입이 댓발 나온 명주의 눈초리에 뒤통수가 쌔하긴 하지만, 든든한 전우도 생겼겠다, 지금은 이 무거운 전우를 어떻게 볶아 먹을까 그것만 고민하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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