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udk

대영시진/ 명주모연

샤2 2016. 4. 9. 13:09
서울. 대영집


-집이 참 인상적입니다.

역시. 문 밖에 5분을 얌전히 있어 줄 유시진이 아니지. 대영은 빈 맥주캔을 한아름 안은 채 한숨을 쉬었다. 제 집인양 들어서며 과장되게 찌그러뜨리는 얼굴이 아주 신나 보인다.

-어휴 이 먼지 먼지. 뭘 이렇게까지 남자답습니까? 숨 안 막힙니까?
-..그 정돈 아닙니다.
-기관지에 문제 있네. 이따 나랑 병원 갑시다. 간 김에 알콜 클리닉도 들리고. 술이 아주 종류별로 .....

쉽게 멈출 리 없는 입이 소파 근처에서 딱 다물리더니 스멀스멀 꼬리를 올린다. 그리고 허리를 굽혔다 펴는데.

-!!!

언제 소파 뒤로 기어 들어갔는지 기억도 안 나는 팬티가 시진의 손에서 흩날리고 있다. 대영은 망했다는 기분을 아주 구체적으로 느끼며 캔을 와르르 놓쳐 버렸다.

-잘 모르시나 본데 현대사회엔 세탁기라는 게 있습니다. 버튼만 누르면 빨래를 해주는 아주 유용한 물건이죠.

사실 쪽팔릴 건 없었다. 작전 중엔 그 팬티보다 더한 냄새도 풍겨봤고 사우나에선 수도 없이 팬티보다 더 한 것도 보였다. 그러니, 세탁기 없습니다. 든 김에 빨아 주십시오, 당당히 받아 치면 될 것을,
 
-이..이리 주십시오.

....성대가 적이다. 아니. 성대 뿐 아니라 얼굴근육, 미세혈관 하나까지 모조리 다 적이다. 신체기관마저 이 모양인데 게다가 상대는 유시진.

-왜 빨개집니까, 명예롭지 못하게?
-......
-오호라~ 이거 이거, 그렇고 그런 겁니까?

놀리는 데도 계급이 있다면 사령관, 아니 대통령도 하고 남았을 인간이다. 어떻게 여기서 이 시간에 저런 농담을, 이라는 놀라움도 없다. 내버려두면 발톱이 빨개지도록 놀려댈 거다. 아직 목덜미까지만 붉어진 대영은 애써 숨을 가다듬었다.

-...일단 주시죠. 라면은 나가서,
-말 돌리는 거 보니까 내 짐작이 맞나 봅니다?
-....진짜 이러실 겁니까.
-뭘 그렇게 수줍어 합니까, 우리 사이..., 어!

벼락같은 몸놀림에 시진이 당황한 사이 대영은 무사히 팬티를 구출해냈다. ..면 유시진이 아니다. 시진은 알파팀 팀장답게 타이밍을 뺏기고도 순식간에 팬티를 다른손으로 옮겼고, 대영의 손과 몸은 갈 곳과 함께 균형마저 잃어 시진에게 우당탕탕! ...안 그래도 먼지 많은 집에 먼지를 보탰다. 드물게 한심한 꼴로, 그것도 자기 집에서 엎어진 대영은 그 와중에도 사수해낸 뒤통수에서 손을 빼내며 투덜거린다.

-그러니까 왜 쓸데 없는 짓을,
-으....

아래서 울리는 신음성에 대영의 눈이 번쩍 뜨였다. 총을 맞아도 엄살 하나 없는 사람이다. 대영은 다급히 시진의 어깨를 잡았다.

-어딥니까, 어디가 아픈데요.
-...마...
-업겠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앞뒤 잴 것 없이 일어나려던 대영이 울음 섞인 한 마디에 우뚝 굳는다. 

-어떻게 실전기술을 쓸 수가 있습니까? 말해보십쇼. 팬팁니까, 납니...

순식간에 두 팔이 만세하듯 올려져 결박된 시진은 잠시 어리둥절하다 곧 아차 했다. 위에 있는 남자, 진짜 화 났다.

-이걸 장난이라고 칩니까.

시진이 유나리자라면 대영은 서보살이었다. 인상만 무뚝뚝했지 웬만한 일론 소리도 안 높이는... 아. 진소장한텐 욕도 했지. 주먹도 날리고. 나한테 아무 감정 없다면서. 시진은 그때를 돌이켜 보며 속으로 미소짓는다. 

-어물쩍 넘어갈 생각 마십시오. 이건 안 봐줍니,
-밑에서 보니까 서상사 턱이 참 멋있네요.
-말 돌리지 마,
-입술은 더 멋있고.

이번엔 절대, 최소한 이딴 장난만은 못 하게 못박으려 했는데 입이 틀어 막힌다. 가만히 웃는 얼굴로 달빛이 드리웠다.

-미안합니다. 서상사가 나 때문에 화내는 게 좋아서 오버했어요. ..아직 안 믿겨서요. 다른 사람들처럼 이렇게 평범하고 시시하게 싸울 수 있다는 게.

이들에게 싸움은 항상 죽음과 맞닿아 있는 말이었다. 언제 어느 때고, 그렇게 헤어져 버릴 지도 몰랐다. 시진은 힘이 빠진 손에서 팔을 빼내 대영의 얼굴을 감쌌다.

-이렇게 싸웁시다, 우리. 시시하고 평범하게. 되도록 오래. 그리고..

헤어지더라도 시시하게 헤어집시다. 니가 잘했네, 내가 잘했네 하다 홧김에. 언제라도 다시 만날 수 있게.

-...그리고요.

시진은 빙그레 웃으며 대영의 볼을 꾹 누른다.

-아무 것도 안 하는 거 아니에요, 이럴 땐.

한참을 바라 보던 대영이 천천히 얼굴을 내린다. 뜨겁게 맞닿은 입술에 눈을 감으며, 시진은 누군가에게 기도했다.
내일도, 또 그 내일도 오늘만 같기를.


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