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화장중'
윤은 담담히 안내판을 올려다본다. 정신없이 들끓었던 게 고작 이틀 전인데 화장터에 혼자 앉아있는 지금은 눈물 한 방울 나지 않는다.
부를 사람은 없었다. 가족은 이미 오래 전에 잃었고 누군가와 속을 터놓고 지내지도 않았다. 새삼 쓸쓸한 것은 아니다. 그저, 형이 참 외롭게 가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데, 문득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려보니 대각선 맞은편에 아는 얼굴이 앉아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왔습니까.
-나 신기 있다니까.
두어칸 떨어진 의자에 옮겨 앉은 화평이 윤 쪽으로 작은 생수병을 밀어준다.
-마셔. 뭐 제대로 먹지도 못했을 텐데.
와서 속이나 뒤집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오지 않을 수 없었다. 최상현 신부의 마지막이기도 했고 그 형을 혼자 덩그러니 보낼 윤도 목에 걸렸다.
-...윤아.
한참을 말없이 앉은 두 사람 뒤로 다정한 목소리가 다가온다. 양신부였다.
-..바쁘신데 뭘 여기까지 오세요.
양신부는 조용히 윤의 손을 쓸어쥔다. 보고 있는 화평마저 위로받는 기분이었으니 고집 센 눈매가 풀어지는 것도 당연했다.
-먼저 와 계셨네요.
양신부의 인사에 화평도 뒤늦게 목례를 한다.
-지나던 길에 잠깐..
전화까지 해놓고 지나다 잠깐일 리가 없지만 양신부는 굳이 지적하는 대신 거즈가 붙은 이마에 시선을 둔다.
-다치셨나봅니다.
-예. 뭐.. 손님이랑 시비가 붙어서요.
-내가 손님인 줄은 몰랐네요.
무뚝뚝한 목소리가 단번에 거짓말을 자르고 든다. 화평은 둘을 번갈아보는 양신부에게 멋쩍게 웃어보였다.
-우연히 만나서.. 별 일 아니에요.
-돌에 맞았어요. 다섯 바늘 꿰맸구요.
-......
-흉터 남는답니까?
..왜. 강형사한테 원망듣고 애들한테 악담듣고 다 말하지. 그 소리 나올까봐 애초에 잘랐구만 암튼 저 꽉 막힌 놈. 노려보는데 윤의 뒤로 화장종료 글자가 뜬다.
-끝났어, 화장.
-....
-안 가? 유골 받아와야지.
빤히 보더니 인사도 없이 간다. 그날 부득불 응급실에 던져놓길래 화 좀 풀렸나 했더니. 그러고 보면 육광이 용하긴 용하다. 병원에서 며칠 안정하랬다고, 쓸데없이 거긴 왜 가냐고 빡빡 말리더니 이럴 걸 알아 그랬나. 근데, 용하면 뭐해. 앓느니 죽겠다며 태워다주고 지금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말리려면 끝까지 말리지. 화평이 괜한 탓을 하며 한숨을 삼킬 때였다.
-윤화평 씨.
한층 더 가라앉은 양신부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똑바로 화평을 마주 본다.
-그 상처.. 혹시 윤이가 그랬나요.
-예?
-숨기지 말고 말해주세요. 윤입니까.
화평은 잠시 벙쪄 있다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니요! 그게 무슨. 쟤가 싸가지 없고 성질 더럽긴 해도... ....
..진짜 마가 꼈나. 화평은 얼른 입을 다문다. 양신부는 불쾌하긴커녕 한결 안심한 얼굴이었다.
-혹시나 했습니다. 다행이네요..
-..저, 근데 왜 최신부 짓이라고 생각하셨어요?
-싸가지 없고 성질머리가 더러워서요?
-.......죄송합니다.
어색한 사과에 양신부가 작게 미소를 띤다.
-당황하셨죠.
-..조금요. 최신부한테 아버지 같은 분이시니까.
-...중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의자를 집어던진 적이 있어요. 맞은 아이 팔이 부러졌는데, 그때가 꼭 아까 같았습니다.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몇 번 내려쳤는지까지 말하는데 너무 놀라 저도 모르게 뺨을.. ...벌써 언제적 일인데 그때 윤이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
-알고 보니 어지간히 괴롭힘을 당했더군요. 책을 찢기고 안 보이는 데를 얻어맞고.. 그러다가 한 번 안 참은 거였어요. 부모님 기일이었거든요.
-...신부님께는 왜 그런 거죠.
윤이 간 쪽으로 고개를 돌린 양신부가 천천히 말을 잇는다.
-...거짓말하면 안 된다고.. 그러면 다 죽는다고.. 상현이 마지막 말이 그렇게 박혔나 봅니다..
형이.. 학원 빼먹지 말랬는데 니가 거짓말을 했다고. 나 때문이라고..
-..진짜 아버지라면 그렇게 오래 혼자 괴롭게 두진 않았겠죠..
-....
-윤화평 씨. ..미안하지만 정말 윤이가 돌을 던졌다고 해도 전 꾸짖지 못했을 겁니다...
화평은 입을 다문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
육광은 시트에 기대 눈만 감고 있는 화평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찬다. 가서 또 박일도 어쩌고 했겠지. 어이그.. 돌맞은 사연에 발끈해 저도 모르게 털어놓은 화평의 과거사를 말없이 듣고 있던 윤이 응급실 비용까지 대신 치르고 떠난 이후 싸가지 신부를 괜찮은 신부님으로 변경한 육광이지만, 왠만한 일엔 이도 안 들어가는 화평이 비맞은 개꼴을 하고 있으니 팔이 또 안으로 굽는다. 그러게 가지를 말지. 안 그래도 까칠한 사람 까칠할 때 건드려 무슨 부귀영활 보겠다고.. 아니, 그 신부도 그래. 그 사연 다 들었으면 원래 그런 놈이구나 적당히 하고 말지, 애를 곤죽을 만들어 놔.. 하던 육광이 아 소릴 내며 허릴 세운다. 잠깐 깜빡했는데 그 얘길 해야 했다.
-화평아.
-....알어. 형 바뻐. 안 데려다줘도 되니까 5분만 더 앉아있자. 기운없어 그래.
-그게 아니고 혹시 최신부
-죽었잖아. 박일도 아니라니까.
-아니. 그 최신부 말고,
화평이 번쩍 눈을 뜬다.
-최윤 왜.
-아, 깜짝이야. 심장 약하다니까 꼭 그러더라, 넌?
-잔말말고. 뭔데. 걔한테 뭐 안 좋은 일 있을 것 같아?
-..왜 이렇게 절절해? 안에서 싸운 거 아니었어?
-형!
아주 달려들 기세다. 육광은 얼떨떨 입을 열었다.
-아니이.. 아까 한 바퀴 도는데 옆 차에 최신부가 앉아 있잖아.
-...뭐?
-그래서 혹시 쌍둥인가 하고..
-........아, 진짜, 형..
시트에 다시 기대는 폼이 딱 헛소리 마라다. 육광은 화평 쪽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나도 이상하다 싶었거든? 비싼 차에 머리도 좀 길고 잘못 봤나 했는데
-..그만해.
-눈이 마주쳤다니까? 날 딱 보는데, 눈코입 빼다 박아선
-그만하라니까?!!
공기가 쩍 얼어붙는다. 지 입으로 지 엄마 죽은 얘기도 아무렇지 않게 하는 화평이 이러긴 또 처음이다. 당황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뭐 이렇게까지 화를 내나 은근 서운하기도 해서 육광도 입을 다무려는데, 무릎에 놓인 화평의 손이 옅게 떨리고 있다.
-...나한테 옮겨 간 박일도 때문에 최신부가 부모님을 죽였어. 그 형 찾겠다고 구마사제까지 됐는데 이제 형도 죽었고. 나 때문에 최윤, 가족을 다 잃었다고. 그런데 난, 그런 놈한테 박일도 잡자고, 구마해달라고, 다 알면서도 그랬다고, 내가! 근데, 지금 꼭 그런 얘길 해야겠어? 다른 형제 없어. 뼛가루만 남은 최신부 말고 다른 형제 없고, 최윤도 아니야. 안에 있었어. 그 미련한 놈, 지 형 뼈가 타는데도 꼿꼿이 앉아 있었다고..
-..화평아.
-...그냥 잊지. 잊고 살지..
'거짓말 하면 안 된다고.. 그러면 다 죽는다고..'
-그깟 말에 휘둘려선.. 등신같은 게..
-화, 화평아!!
손등으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제대로 놀란 육광은 어쩔 줄 모르며 화평을 끌어안았다.
-미안해. 잘못했어. 잘못 봤어. 그래, 내가 잘못본 거야. 어?
정신없이 사과하며 달래는 품에서 화평은 질끈 입술을 물었다. '다행이네요. 아픈 건 느껴서.' 차가운 목소리가 칼처럼 박혔다.
**
-저 박일도 잡으려구요.
휑하니 흰 유골함만 놓인 납골실을 오래 들여다보던 윤의 말에 양신부가 낮은 탄식을 뱉는다.
-...꼭 그래야겠니.
-한신부님도, 형도, 부모님도..
강형사의 어머니와 ..윤화평의 어머니, 할머니까지.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어요. 놔두면 더 많이 죽일 거구요.
-...교활하고 강한 악령이야. 너 혼자 어쩌려고.
-혼자는 아니니까 너무 걱정마세요.
-......
-..그보다 신부님. 부탁이 있습니다.
-..말해보렴.
-윤화평 씨한테 부마자의 예언을 들었어요. 형이 동생한테 간다고 했다고.
윤은 양신부를 향해 곧게 선다.
-..현이. 혹시 살아 있는지 알아봐주시겠어요.
최현.
윤의 쌍둥이 형제였다.
**사실 3p였다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