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건드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누렇게 때가 낀 가로등, 시든 채소를 파는 노인, 비를 머금은 회색구름, 양철처마에 떨어지는 빗방울, 짠 내나는 바닷바람, 물웅덩이를 철벅거리는 시커먼 맨발. 

 

여수.

그, 여수. 

 

 

 

가을장마

 

 

 

 

 

 

가을장마가 한창이다. 장판에서 올라오는 습기에 온 몸이 다 눅눅하다. 시큰거리는 발목을 주무르며 다 떨어진 달력을 쳐다봤다. 뒷방 노인네 꼴로 방구석에 쳐 박힌 지 벌써 보름. 하지만 지겹지는 않다. 오히려 다행이었다. 다 지겨웠던 참이다. 생선비린내도, 바다비린내도, 피비린내도.

반대조직과의 칼부림은 마무리됐다고 들었다. 청이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조만간 승진할 거라며 애들이 더 신나 짹짹대고 갔다. 너덧을 한번에 쓰러트리고 뒤에서 달려드는 차를 돌려차기로 부수고 아주 신화를 쓰더만. 정작 영웅담의 주인공은 한 마디가 없다. 느가 자빠져 있을 동안 나가 아주 조쟈버렸제- 먼저 떠들고도 남을 사람인데. 설마 아직도 신경 쓰나. 이 발목.

이런 생각의 끝은 다 그만두고 싶다, 다. 때려 칠까. 그만둘까. 서울로 갈까. 대구로 갈까. 아니면 인천... 하지만 베네치아나 스위스만큼 먼 지명이다. 이짓거리가 끝이 나긴 날까. 조바심이 들수록 일상은 낯설어졌다. 사람피도 신물 나고 거들먹거리는 깡패새끼들도 역겹고 형님거리며 따르는 어린 낯들도 싫고. 무엇보다 저 쿵쾅거리는 발소리.   

 

“아따 비 한 번 지랄 맞게도 온다. 니미 다 젖어 부렀네. 뭣하고 있었냐?"

"꼴이 그게 뭐요? 우산은 어쩌...“

“춥다야. 드가자.”

 

꽃무늬 셔츠를 요란스레 퍼득이며 들어서려는 걸 빤히 봤더니, 아 느 형 얼어 뒤지겄다고요오, 부러 희번덕댄다. 하지만 그래봤자 금세 수그러져 뒤통수를 긁적이는 청이다. 

 

"씨벌놈 쪼리기는. 잘 하면 치겄다.“

“그 병. 나은 거 아니었소?”

“...긍께 요거시 어떻게 된거냐믄. 조짝 가상이를 도는디 웬 가시나 하나가 서 있는 거여. 한 여섯은 되았을라나. 아이고야~ 폭삭 젖어가꼬 땟물이 질질 흐르는디 그지꼴이 따로 없더라고. 아 나는 그려도 느 생각해서 그냥 올라 혔재. 그란디 고거시"

 

손짓 발짓 섞어가며 생쇼를 하신다. 생긴 건 말하지 않아도 조폭 똘마니면서 아무튼 여수바닥 웃긴 짓은 혼자 다 하지. 고개를 저으며 담배를 물었다. 장대비는 연일 계속이고 앞에서는 빤한 재연이 한창이고 담배는 오늘따라 더럽게 맛없다 씨발. 낮게 뇌까리며 시선을 내렸다. 구정물이 잔뜩 튄 잿빛 바짓단에 커다란 맨발이 나 좀 보라는 듯 덜렁거린다. 안 그래도 못 생긴 게 더럽기까지 하다. 생선 핏물에 채소찌꺼기, 찌린내 나는 오물이며 병조각까지 예사로 널린 시장바닥을 또 저러고 왔으니 깨끗한 게 별 일이긴 하다만.

 어째 잠잠하다 했다. 누구든 꾸질해 뵈면 신발 던져주는 저 고질병. 사실 그 ‘꾸질’의 기준도 애매한 게 어느 때는 팔다리 멀쩡한 걸인, 어느 때는 취했을 뿐인 아줌마, 또 어느 때는 빈 배로 돌아온 어부 등등 대상이 존나게도 광활하셔서. 차라리 지갑을 털어주라고, 낮 잡혀 일수도 못 걷겠는다고 입이 닳도록 말을 해도 뉘 집 개가 짖는구나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 속을 뒤집는다.

그 물색없는 행태가 잠깐 사그라들긴 했었다. 때는 바야흐로 세달 전인 7월. 여수의 한 조직과 한창 대립각을 세우던 때였다. 그날도 청은 전봇대 밑에 대자로 뻗어 있는 술떡한테 산 지 이틀도 안 된 구두를 던져줬는데 골라도 하필. 그 술떡이 반대쪽 어깨였던 거다. 이 기막힌 소식을 접하신 윗대가리는 눈을 뒤집었다. 발모가지를 잘라 와도 시원찮을 판에 신발을, 뺏은 것도 아니고 벗어줬으니 어찌 아니 빡치겠냐만은, 그를 감안한다 해도 확실히 지나친 매타작이었다. 눈엣가시 같은 청을 아예 잡아버릴 심산이었는지 근 한 시간을 두들기더니 기어이 머리까지 터트렸다. 해서 뒤늦게 말리고 들다가 팔 부러지고 발목 나가고. 일어나보니 병원이었다. 막 눈 뜬 환자한테 매너도 없이 욕설이 쏟아졌다. 야 이 호로노므시끼야. 니가 뭐단다고 나서냐, 나서길. 또 이라믄 그땐 아주 나가 죽여 벌랑께. 지도 머리에 허연 붕대를 둘둘 말고 실핏줄 터진 눈으로 쏘아보는데 무섭기보다는 웃겼고, 웃기기보다는 암담했다. 

 

“....아. 어야!"

 

불그레한 낯이 어느 새 코앞에 와 있다. 황갈색 눈동자가 너울거렸다.

 

"왜. 어디 안 좋냐?"

“.......”

"야가 귓구녕에 공구리 쳤나. 왜 그냐니."

"발이나 씻고 와요."

 

정신 차리고 어깰 밀어내자 싸가지 없는 시키, 투덜대면서도 계속 기색을 살핀다. 그날 이후 변한 것 중 하나다. 조금만 멈칫거려도 눈을 안 떼고, 신발 병을 고치려 애쓰고, 뒤통수 후려치던 손버릇이 사라지고. 무엇 하나 반갑지 않다.

 

"꼭 씻거야 돼냐? 빗물에 거진 다 씨껐어야.“

“.......”

“아아. 알긋다 알긋어. 암튼 사내새끼가 조낸 깔끔 떨어. 그러다 거시기 떨어지믄 형님~ 안 하고 오빠야~ 할라 그르냐?”

“쉰소리 그만하고 퍼뜩 가요.”

“니미 퉁박은. ...근디 느 어째 오늘은 새살이가 짧으시다?"

“그렇게 씻기 싫음 그러고 다니지를 말든가.”

“상렬한 시키 말뽄새허고는.”

 

담배를 무는 구부정한 등에 비 얼룩이 그득하다. 재헌이 자식은 신화 쓸 정성으로 우산이나 제대로 씌워주지. 질색팔색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괜한 탓을 하게 된다. 정말 괜한 탓이다.

 

“...나가 걱정이 돼 안 그르냐. 날이 이라믄 개리담서. ..그 뽀사진 데 말이여. 과실 아지매가 그러드만.”

 

매캐한 연기 같은 목소리가 딴 사람 같다. 딴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오다가다 만난 아무개.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동창. 평생 만날 일 없는 지구 반대편 인간 그 누구라도 이 사람만 아니었으면. 

 

“어야. 니는 나가 영 가찹지를 않재.”

“...뜬금없이 건 또 뭔 소리요.”

“..아니라곤 안 헌다.”

“형도 그렇잖소. 이 바닥이 누굴 쉬이 믿을 곳이..”

 

대체 무슨 소릴 하려는 건지. 무슨 할 말이 있다고. 고개를 떨어트린다. 장판바닥이 자글자글했다.

 

“...나가 껍데기만 샐샐대는 걸로 뵀냐.”

“.......”

“...써글놈. 조낸 써늘허네.”

“...감기 들겠소. 씻고 옷 갈아 입”

“그란 건 또 맴이 쓰이냐.”

“....그럼 그러고 있던,”

“그라고 보니 니는 한 번을 안 묻더라. 신 벗어준다고 지랄해싸면서도 왜 그냔 소린 없었제. 안 궁금허냐. 나가 와 이라는지.”

 

듣고 싶지 않은데 입이 안 열린다. 입도, 손도, 눈도 마음대로 안 된다.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다.

 

“...우리 어매가 말이여. 겁나 이삤거든. 쬐깐한 나가 보기에도 퍽이나 잘났재. 근디 씨벌 얼굴값 헌다 안 허냐. 언놈이랑 배가 붙었는지 눈이 맞았는지 보따리를 싸드라고. 도둑새끼맹키로 조심조심 나가는디 발소리가 으째 크던지. 귀청 하나는 타고났응께. 어디 가요 엄니- 혔재. 아따 지 새끼를 무슨 구신마냥 보드만 신발도 없이 뛰가대. ...겨울이었는디 조또 추버꺼든. 눈이 녹들 안 혀서 나도 몇 번이나 자빠진 길을 쌔빠지게 달리는디 뒤통수에 대고 나가 그렸다. 엄니 신발 신고 가소. 신발 신고 가소... 씨벌놈 속도 없재. 저 버리고 가는 어매 뭐 이삐다고. ...근디 싫드라. 조낸 초라하잖여. 뭔 죽을죄를 지었어도 그라고 초라한 건 참말 좆 같응께.”

 

갑자기 춥다. 팔도 다리도 발도 시리디 시리다. 본 적 없는 골목에 서 있는 것 같다. 구부정한 등판만 한 어린것이 고사리 손에 빨간 뾰족구두, 퍼런 쓰레빠, 다 떨어진 운동화.. 그게 뭐든 엄마가 신을 만한 것을 열심히 흔들며 신고가소, 신고가소 외친다. 정작 저는 맨발인데. 벌겋게 다 얼어 터졌는데. 다 자라서도 아무에게나 신을 던져주는데.

자성에게도 있었다. 그런 어리석고 못난 발이.

할머니는 한국말이 서툴었다. 철부지들이 꽐라 꽐라 놀려대도 몇 개 없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히이- 웃었다. 그게 어찌나 싫던지. 머리 굵어지고 나선 시장 귀퉁이에 앉은 할머니를 부러 모른 척했다. 그땐 그랬다. 찌든내 배인 골목도, 곰팡이 낀 집도, 다른 엄마와 다르게 늙고 못생긴 할머니도 그저 외면하고 싶었다. 절절 끓던 여름이었다. 할머니는 전봇대에 허연 종이를 붙이고 있었다. [그면금지] 삐뚤빼뚤 벌건 글씨였다. 같이 다니던 애들과 보란 듯이 담배를 물고, 아 금연 금지라매, 종이를 찢으며 낄낄거렸다. 할머니는 그래도 웃을 뿐이었다. 새벽녘이 되서야 집에 들어갔다. 할머니는 구질구질한 분홍담요를 덮고 있었다. 다음날이 되도, 그 다음날이 되도... 할머니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 개다리소반에 식어빠진 김치찌개와 수북한 밥이 차려져 있었다. 누런 종이도 함께였다. [굼고 다니지 마.] 목구멍이 미어터지게 밥을 쑤셔 넣다가 문을 박찼다. 전봇대까지 한달음에 달려갔다. 너저분하게 널린 종이조각을 손바닥으로 쓸어 모았다. 그제야 발바닥이 따끔거렸다. 병조각을 밟았는지 피가 줄줄 새고 있었다. 너무 아팠다.

 

“나는 말이다. 니도 그렸다. 좆같이 생긴 게 피 칠갑을 허고 받아주쇼 하는디 엄동설한 신도 없이 서 있는 거 맹키로 추버 보이드라. 여직도 그러고. ..긍께 나가 니를 보면 맴이 허벌 구지다 이거여 씨벌놈아.”

 

더듬더듬 담뱃갑을 쥐어 담배를 문다. 손가락이 병신같이 떨렸다. 몇 번의 헛손질 끝에 겨우 불을 붙이고 목구멍으로 연기를 넘겼다.

 

“...왜요. 내가 맨발바람으로 도망이라도 갈까봐.”

"가봐야. 나 뜀박질 12초여.”

“...뻥은 암튼.”

“짐 뛰보까?”

 

발끈하는 척 돌아보는 낯이 언제나처럼 히죽거린다. 

 

“...그래서. 어머니가 원망스럽소?”

“원망은 무신. 지 팔자 지가 사는 기재. 우는 년도 속이 있어 우는 거고.”

“...아버지는 뭐하셨는데.”

“그기 뭔디. 묵는 거냐?”

“그럼 보육원에서 컸소?”

“어따. 그르케 궁금한 거슬 이때까정 으째 참고 살았으까이?”

 

시원한 미소에 입이 굳는다. 이제 와서 이런걸 뭐 하러 묻나. 강형철에게 보고라도 하려고. 정청이 이자성과 비슷하게 구질스러운 유년을 보냈다고. 어머니는 행불이 아니라 도망갔다고. 아버지는 찾아볼 필요도 없겠다고. 어린 청이 빙판길을 맨발로 달렸다고. 지금도 이유 없이 신을 벗어준다고. 그러니 어떡하냐고. 어쩌면 좋냐고.

 

“실은 니를 보내야지, 보내야지 혔다. 암만 해도 여서 구를 낯짝은 아닝께. ...근디 씨부럴... 안되대. 발목이 뽀사졌는디도 안 되겄더라. 그라니 으쩌냐. 같이 가야재.”

“.......”

“와. 싫으냐.”

“...내가 가란다면 가고 있으라면 있을 놈이오.”

“그러니께 나가 시방 매달리자너요. 이 씨빠빠야.”

“...철봉이야? 매달리긴..”

“같이 가자. 그라다 보면 언젠간 니도 따땃~해지지 않겄냐. 아니. 나가 꼭 그러코롬 해줄랑께. 우리 부라더는 이 좆같은 형님만 믿으면 돼야?”

 

진짜 형이라도 된 것처럼 말간 웃음을 차마 다 보지 못하고 고개를 틀었다.

 

“....브라더는 무슨. 병이나 고쳐요. 또 사단내지 말고.”

“니는 이자부터 부라더여. 죽이제?”

“..철자는 아쇼?”

“형을 띄엄띄엄 봐야? 비읍이니께 비, 리을.. 오야. 알, 글체. 그라고 .....음.. 에이..?”

 

말없이 연기를 내뿜자 그려 나 무식허다. 니는 다구지셔서 좋겄어요 니미. 툴툴거리며 일어난다. 시원찮은 화장실 문이 덜그럭 열리고 닫히고, 그제서야 바닥에 주저앉았다. 축축했다. 손바닥도, 등도, 마음도.

 

반년 후. 북대문에 피바람이 분다.

매타작을 놨던 형님은 일타로 고깃덩이가 돼 드럼통에 담겼다.

먼 바다로 수 십개의 드럼통이 떨어지고, 청은 북대문의 오야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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