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뭐랍니까."
 
초조하게 백미러를 주시하는 재헌에도 백발의 사내는 비 내리는 창밖만 보고 있다. 어젯밤의 객혈은 남의 일인 양  평온한 낯이다. 재헌은 성마르게 튀어나오려는 목소리를 애써 가다듬었다.   
 
"...말씀해주십시오. 제게도 숨기실 겁니까."
"......."
"회장님."
"......"
"회장,"
"상규야."
"예, 예!"
 
훈련소 신병마냥 운전대만 잡고 있던 상규는 제가 낸 소리에 놀라 보조석으로 눈동자를 굴린다. 재헌의 미간이 한 치는 더 패여 있었다. 아이고..  마른침을 삼키며 백미러를 힐끔이자 다행이 백발의 사내는 옅게 웃은 채다.
 
"넌 느이 작은형 닮지 마라. 갈수록 잔소리만 늘어 못쓰겠어." 
 
고래싸움 새우등이 이런 뜻이구나. 죽어도 이해 안 되던 속담이 단번에 알아진다. 상규는 어정쩡하게 웃으며 고갤 숙였다. 막내가 큰형님 운짱을 다 하고. 잔디 깔고 들어왔냐? 장난스럽게 어깰 토닥이던 형님들에게 딱 이 한 마디만 하고 싶다. 살려주세요!!! ...하지만 울고 싶은 막내의 심정따위 헤아릴 여유가 없는 재헌이다.  
 

"어디가 얼마나 안 좋으신 겁니까. ...설마.. 어제가 처음이 아니신 건"
"비 참 지랄 맞게도 온다..."

 

재헌은 한숨을 삼킨다. 이어질 말을 알 것 같았다.

 

"..상규야. 여수로 가자."     
 
        

 

 

 

 

겨울장마         
   

 

 

 

 

 

부둣가에 선 상규는 잠시 넋을 잃는다. 그에게 본디 바다란 기집애 꼬실 때나 오는 곳으로, 비와 바다는 말도 안 되는 조합이었다. 비가 오면 일단 해가 잘 안 보이고 그렇게 분위기가 틀어지면 모텔까진 택도 없으니까. 그런데, 와. 시퍼런 바다에 수천 개의 빗방울이 튀어오른다. 바다에 비가 오는 건지, 하늘에 비가 오는 건지 희끄무레한 구름이 포말처럼 넘실거린다.  

죽이네, 씨발...

 

"죽이지."

 

웃음기 배인 목소리에 상규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여긴 여수. 검은 우산 아래 인자하게 웃고 있는 분은 회장님... ....그럼 나, 지금, 회장님 앞에서 욕한 거야?! 지상규 이 미친놈아.. 상규는 얼른 구십도로 허릴 굽힌다.

 

"죄, 죄송합니다!!"

"날 죽이겠다는 것도 아닌데 뭘. ....음. 설마 그런 거냐?"

"예?! 아, 아뇨!! 아닙니다!! 제가 무슨, 저 따위가 어떻게. 저는 그러니까 칼도 잘 못 쓰ㄱ... ..아, 아니. 아예 서툰 건 아니구요. 그러니까 그게.."

 

금세 터져 나온 너털웃음이 아니었으면 밤새 횡설수설 했을 거다. 시발. 이런 개쪽이... 바다에도 쥐구멍이 있을까 고심하던 상규는 자신이 맥주병이라는 걸 깨닫고 그냥 목이나 시벌게지기로 한다.  

 

"이런 거 처음 보니."

"예에.. 너무 멋있어서 저도 모르게 그만.."

".....상규 니가 올해 몇 이라고."

"서른입니다, 회장님."

 

빠릿하고 똘똘해야 제맛인 막내를 이런 상병신으로 뽑다니. 나 아래로 모두 엎드려 뻗쳣! 하지 않은 것만도 감지덕진데 나이까지 물어 주시다니. 승은 입은 무수리 심정으로 감격하고 있는 상규를 아는지 모르는지, 회장 이자성의 시선은 점점 먼 바다로 향한다. 

상규 나이쯤 자성은 이 바다가 멋있는 줄도 몰랐다. 드럼통을 던지고 나면 퍼런 물이 벌겋게 비치기만 했다. 그만 뛰어들까. 넋을 놓고 있으면 거칠고 뜨거운 손이 팔을 잡아챘다. 막막하던 시절이었다.   

 

"노망난 영감 때문에 힘들지."

"아, 아닙니다. 무슨 말씀을..."

 

축축이 젖어있는 상규의 맨발. 지금쯤 거미줄처럼 엉킨 시장골목을 바닥까지 뒤지고 있을 재헌의 발. 

오는 길에 한 노파를 만났다. 술냄새를 풀풀 풍기며 맨발로 걷고 있었다. 자성은 앙상하게 마른 발을 건너보다 신을 벗었다. 남자구두가 무슨 필욘지 냉큼 들고 달아나는 노파 뒤에서 재헌은 눈가를 붉히며 제 구두를 내밀었다. 하지만 자성이 어디 보통 고집인가. 누군가도 '고집으론 니가 오야다 이 씨빡새야!'  항복했었는데. 꽤나 열 받아했었지, 그때... 희미하게 떠오른 벌건 낯에 양복 안주머니를 더듬거리던 자성이 이내 헛웃음을 뱉었다. 죽을 때가 되긴 됐나 보다.  

 

"상규야. 담배 한 갑만 사다줄래."

"....저.. 하지만 작은 형님께서.."

"부탁한다."

".....예. 알겠습니다."

"신발 신고 가. 길 험하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쏜살같이 뛰어가는 상규의 등으로, 신발 신고 가소, 신고 가소.. 실제로는 들은 적도 없는 앳된 목소리가 울린다. 자성은 무심코 목울대를 만지다 손을 떨궜다.  금연할 적 습관이다. 다시 핀 지 이십 년도 넘었는데... 

 

그러고 보니 여기서 담배를 끊었었다.

눈 내리던 밤. 저기 저 방파제에서.

 

 

**

 

 

여 부둣간디.

전화 한 통에 헐레벌떡 달려 왔다. 방파제에 쭈그려 앉은 등을 보자마자 욕지기가 치밀었다. 말없이 사라져 삼 일이나 연락두절이었다. 갑자기 커진 세에 여수뿐 아니라 다른 지역 조직과도 험악하던 때다. 여수바닥을 이 잡듯 뒤지다 못해 강형철까지 찾아갔었다. 어느 조직이에요. 아니면 팀장님이에요? 팀장님이 시켰냐구요!!! 강형철에게 정신없이 악다구니를 쳤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드럼통에 담긴 청이 어른거렸다. 배가 갈려 전봇대 밑에 널부러져 있기도 했다. 모두 맨발이었다. 미칠 것 같았다. 삼일밤낮을 앉지도 서지도 못했다. 그러니 멀쩡하게 담배나 피고 있는 청에 속이 안 뒤집어지겠는가. 형님이고 뭐고 어디 하나 분질러놓겠다 이를 악물었다. 

그런데.

 

"얼레? 지랄 안 허네?" 

 

후려치긴 커녕 그대로 굳어버렸다. 손에 뭘 쥐었는지 잘그락 잘그락. 또 저 빌어먹을 맨발. 검은 양복. 팔에 두 줄짜리 삼베 완장. 

 

"별 일 없었제? 그럴 거여~ 우리 부라더가 누군디. 안 그냐?"

"...무슨 일이에요."

"뭐시. 아. 요거?"

 

완장을 떼 내 장난스럽게 흔드는 청은 그새 말라 있었다. 투박한 손가락 끝으로 담뱃재가 바스라진다.

 

"뒤졌다."

"....."

"내 어메 말이여." 

 

 바다로 날아간 완장을 자성은 망연자실 들여다 본다.

 

"며칠 전에 으째 알고 전화를 했드라. 상판 한 번 비달라기에 존내 구린 면상 뭐단다고 그르나 가봤드니 벌써 뒤졌드라고. 우덜 방보다 쬐깐한 데 누버있는디 씨부럴 그 이삐던 낯짝도 배러브렀어. 발도 상처가 자그르 허고. 그라서 노잣돈 대신 안 챙겨줬냐."

 

허공에서 까닥이는 맨발이 바다만치 퍼렇다. 병 좀 고쳐볼라 했드니 영 도와주덜 안 헌다, 씨빡. 실실대며 먼 바다를 바라보는 청의 등이 오늘따라 굽어보였다. 자성은 가만히 청의 옆에 앉는다.    

  

"...손에 건 뭐요."

"으이. 유산. 쥐고 있걸래 받아왔다. 이걸로 전활 혔나벼. 씨부럴 지금이 어느 시댄디 공중전화질이여. 그쟈?"

 

손바닥에 놓인 동전은 10원, 50원, 100원, 10원, 어림 세어도 천 원이 채 안 돼 보였다. 그걸 동앗줄처럼 쥐고 천 번을 망설였을 여자. 자성은 그만 고개를 돌리고 신을 벗는다. 

 

"신어요. 춥소."

 

답이 없는 청을 더 채근하지 않고 담배를 무는데 거친 손이 불쑥 채 간다. 길게 그늘진 낯이 꼭 딴사람 같았다.  

 

"거 돗대요."

"......" 

"...담배 사와요?"

"니는 이자부터 금연이여."

 

...금연. 아주 오래 전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형 말 들어 빙시나. 깡패새끼가 폐암으로 뒤지면 을매나 웃기겄냐."

"..사돈남말은."

"느랑 나랑 사돈되믄 쪼까 복잡해지는디. 서열이 꼬여버려야."

"...있어요. 신발 신고."

 

자성은 목울음을 삼키며 일어난다. 맨발이 금세 차가워졌다. 저의 그날처럼. 청의 그날처럼. 하지만 되돌릴 수도, 없던 일로 칠 수도 없다. 청의 엄마도, 제 할머니도, 처음부터 청을 배신한 것도, 이제와 이토록 피가 마르는 것도. 너무 멀리 왔다. 너무 멀었다. 

 

"...자성아."

 

돌아가는데, 덤덤한 목소리가 등을 때린다. 저절로 발이 멈췄다. 정신 차려, 이자성. 강형철의 당부를 되뇌이며 자성은 빈주먹을 움켜쥐었다.  

 

"오래 살어라."

"......" 

" ...오래 살어야."

 

형도요. 형님도요.

그렇게 말해줄 수가 없어서 동이 뜰 때까지 애꿎은 입술만 악물었던 그 날. 수평선 너머로 해가 떠오를 쯤 자성은 담배를 끊었다.

북대문이 골드문에 합류한 건 그 이듬해였다.

 

 

** 

 

    

이 정도 걸었다고 숨이 차다니. 늙긴 늙은 모양이다. 자성은 숨을 고르며 문지방에 걸터 앉았다. 푸드득 날아오르는 먼지에 비해 방은 놀라울 정도로 그대로다. 쾨쾨한 냄새며 곰팡이 낀 벽이며 누런 장판까지. 저 손바닥만 한 창문 밑 쯤 티비가 있었다. 하도 고물이라 몇 번을 후려쳐야 화면이 잡혔다. 옷걸이는 두 뼘 옆으로 자성이 질색했던 청의 셔츠가 잔뜩 걸려 있었다. 거울은 저렇게 깨지지 않고 멀쩡했다. 뭐 볼 게 있다고 만날 거울 앞에서 폼 잡고 있는 청을 자성이 때마다 비웃어주곤 했다. 그때의 청년이 깨진 거울처럼 폭싹 젖은 노인네가 됐다.  

 

그를 보내고도 이렇게나 오래, 혼자 살아남았다. 

 

갑자기 쏟아지는 기침에 자성은 입을 틀어 막았다. 하지만 지나갈 기침이 아닌 모양인지 도무지 멈추질 않는다. 가슴이 찢길 듯 해 벽을 짚다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입가로 피가 흐르고 식은땀이 줄줄 새며 팔다리가 뻣뻣해진다. 마지막이 이 집에서라니. 지나치게 관대한 거 아닌가. 가물가물한 시야로 검은 구두가 비쳤다. 재헌의 것도, 상규의 것도 아니다. 자성은 희미하게 웃었다.   

 
"...써글놈. 형 말이 아주 쥐좆이제? 깡패새끼가 폐암으로 뒤지면 웃기다고 나가 혔냐 안 혔나."  
 

말만 그렇지 이마를 짚는 손은 여전히 다정하다. 걱정이 그득한 얼굴도 예전 그대로. 혼자만 젊다니. 역시 치사한 인간이다.

 
"재헌이 놀라겄다."
"아직도 앤 줄 알어."
"아까 보니께 시장통에서 질질 짜드만. 느는 왜 안 하던 짓은 혀서 애를 울리냐이."
"윗대가리 모시는 게 다 좆같은 거지 뭐."
"나가 좆같았다 이거여?"

"말귀 하난 여전하네." 

"....오래 살라니께 씨벌롬..."

 

나 환갑도 지났어. 너무한 거 아니요?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들리나 보다. 뚱하게 흘겨 보는 얼굴을 가만히, 한참 들여다봤다.  

 

"간만에 보니께 존내 잘 생겼제?"

"...존나게 반갑긴 하네. 다신 못 볼 줄 알았는데."

"...따라 허기는 씨벌... 뒤지면 다 보는 기제."

"...나 안 볼까봐. 안 보겠다 그럴 줄 알았어."

"독하게 굴라니께 또 옆집 개새끼가 짖었고만."

"...형."

"......그려."

 

회장실에 앉아 꿈을 꿨었다. 손을 내밀면 그가 한숨처럼 웃으며 잡아주는 꿈. 

 

씨빠 브러더는 이 좆 같은 형님만 믿으면 되니께

가자.
같이 가자. 

 

따뜻해서, 너무 따뜻해서 눈을 감았다.

흰 빛이 쏟아지며,  다시 여수다.

그, 여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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