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중구에게 정청은 한결같이 이해 못할 인간이었다. 엄마 허리쯤 오는 나이에 부둣가 횟집에서 처음 만났는데 이제부터 얘가 니 형이야.’ 하는 말에 어떻게 이렇게 생긴 게 무려 내 형씩이나 될 수 있는지 분개하여 내미는 손을 힘껏 걷어찼다. 그렇게 시작부터 난제였던 청은 그 후로도 꾸준히 그 난해함을 자랑했다. 예를 들어 부모님이 한꺼번에 증발해버린 6학년 겨울이 지나자 같이 산 초반 3년을 언제 데면데면 굴었냐는 양 정자 대전투라도 함께 치른 형제처럼 돌변했고, 꼴사납게 좋아 죽던 진숙씨가 죽었을 때는 유해를 뿌린 바다에 눈물 한 방울 보태지 않는 등 말하자면 긴긴 밤을 다스로 이어 붙여도 모자란다. 공구리를 쳐버릴라 싶게 나불대던 주둥이를 돌연 다무는 것도 그 맥락으로 평소라면 저 지랄병도 팔자다 하고 혀도 안 찰 일이다. 그런데 그 익숙한 작태에 왜 이토록 화가 치미느냐. 아무리 팔자라도 씨발 정도가 있어야 할 것 아니냐.

남이야 열불이 끓건 말건 전봇대 밑에 쭈그려 앉아 여유롭게 흡연 중인 미친놈. 서열 5, 6. 그것도 나중에 다시 올려준다는데 청은 끝까지 확답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석동출은 아량 넓게 허허거리며 하룻밤에 몇 십 만 원짜리 호텔방을 잡아줬다, 해서 지금 호텔방이냐, 영등포역이다. 느가 알아서 혀라 가 설마 막차도 끊겼는데 역에서 기다리다 첫 차 타겠다는 말인 줄 누가 알았겠냐. 저 새낄 죽여 살려 한참을 씨근덕대던 중구는 결국 바락 소릴 내질렀다.

-야 이 미친 또라이 새끼야! 여관방이라도 들어가 지랄 떨라고!!!

  

이 시점에서 무릇 이중구라면 왜 석동출한테 대답을 안 했으며 야반도주 꼴로 이 청승은 또 무엇이냐 따져 묻거나, 그도 아니면 구부정한 등을 옴팡지게 걷어차기라도 해야 그답다 하겠지만 사실 중구와 청은 이제껏 싸운 적이 없다, 고 하면 비웃을 사람을 적어도 열은 알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늘 싸우니까 싸우는 줄도 모르는 거다 항변할 이가 있으면(그게 이자성이라고 중구는 확신한다.) 먼저 싸움의 기준을 논하는 게 순서라 하겠다. 서로에 대한 언사로 기준을 두면 둘은 부모 원수쯤 되고 행위로 따지면 서로 나라 팔아먹은 역적쯤 되겠지만 중구에게 싸운다의 동일어는 배때지에 사시미를 쑤셔 넣는다, 유사어 대갈빡을 빠개 버린다, 손가락을 마디마디 자른다 기타 등등 되시겠으니, 누가 뭐래건 둘은 이십 년 동안 싸움 한 번 한 적 없는 의좋은 형제였다. 중구는, 저는 청을 두고 개새끼 씨발새끼 온갖 새끼는 다 갖다 붙이면서도 누가 청에게 입고리라도 살짝 비틀면 입을 아예 찢어버릴 기세로 덤벼들었고, 그의 이해 못할 행태를 누구보다 못 견뎌하면서도 이유조차 물은 적이 없었다. 어릴 때는 대체 왜 그러냐 무엇이냐 사람이냐 짐승이냐 제 성질에 못 이겨 팔팔 대기도 여럿이었지만 어느 기점으로는 그마저 관두게 되었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청의 그 지랄병이 팔자가 아닌 정신병이라도 개의치 않을 터였다. 혈기마저 잃고 뿌리 썩은 나무 꼴로 시든대도, 갑자기 사시미를 꺼내들고 혈족으로 여기는 동생들을 까뒤집어놔도, 그 모든 어긋남의 시작이 저에게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 형제로 여기고 싶지 않은 면상에 뛰어난 기행으로 사람 속을 열두 번은 뒤집는 종자지만 청은 결코 이렇게 풀릴 인물은 아니었다. 소싯적 주먹질도 성정이 불같은 중구를 말리다 말려든 것이 태반으로, 사실 그는 주먹쓰길 꺼려했다. 청의 꿈은 어부였다가 농부였다가 구멍가게 사장에 정착했다. 말만 그런 게 아니라 골목 끝 다 쓰러져가는 대성상회를 목표로 삼고 노친네한테 가겔 사려면 미리 잘 보여야 한다며 여름이고 겨울이고 그 앞에서 담배 피는 놈들을 열심히도 쫓아냈다.

중구는 그런 꿈은 꿀 수 없었다. 코끝에 붙은 비린내가 싫었고 셋이 누울 수 없는 판잣집이 쪽팔렸다. 성공하고 싶었다. 해서 청이 화교든 저가 고아든 누구도 무시할 수 없게 만들고 싶었다. 구멍가게에 양담배를 채워 넣고 그거 피는 맛으로 일 년의 반을 살리라 웃는 청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세상천지 식구로 여길 이는 하나뿐인데 그 하나가 그토록 다르니 그제야 천애고아라는 실감이 들었다. 그건 아주 좆같은 기분이어서 중구는 부러 더 같잖은 걸 꿈이란다 까뭉개고 비아냥거렸다. 그때마다 청은 어이구, 양담배 안 줄까봐 그르냐? 니 것도 다 마련할 것인게 승질 피우지 말어야.’ 속을 꿰뚫듯 실실댔다.

...그 같잖은 꿈을 떠올리며 이마를 짓찧게 된 것이 그로부터 얼마 후다. ...중구는 청에게 빚이 있었다. 갚지 못할 빚이었다.

-...청승 그만 떨고 일어나어디 들어가 소주라도 마시게.

-......

-알겠다고. 내가 마무리 할 테니까 가라고, . 누가 잡냐고 이 새끼야. 길바닥에 이러고 있지나 말자고.

-......

-..사람이 말을 하면 좀. 씨발 개가 짖냐?

-....중구야.


청이 중구를 이름으로 부른 건 손에 꼽았다. 부모님의 부재를 알린 아침. 진숙씨가 죽은 다음 날. 빚을 지고 말았을 때. 그런데 반나절 만에 터진 입에서 중구야 라니. 중구는 담배를 든 채 마른침을 삼킨다.

돌아보는 눈동자가 음울하게 가라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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