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코흘리개 시절-물론 진짜 코를 흘리지는 않았다- 자성은 두 명의 코흘리개를 알았다. 물론 둘은 바락바락 아니라고 우기겠지만. 콧물 좀 흘린 게 뭐 대수라고. 아무튼 중요한 건 누런 콧물이 아니라, 이자성이 아주 오래 전부터 그들을 알았다는 거다.


돌이켜봐도, 후지다는 말도 과분할 만큼 후진 동네였다. 알량한 나무판대기만 없으면 길바닥이나 마찬가지일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 옆집 방구소리도 들릴 지경이었다. 그러니 사생활이란 애초에 달나라 토끼 방아 찧는 소리로, 하루가 멀다 하고 옆집 접시가 깨지고 앞집 여자 머리통이 깨지고 뒷집 사내애 코뼈가 내려앉았다. 그런 곳이었다. 벼랑 끝까지 내몰린 사람들이 그래도 살아 보겠다고 아득바득 버티다가, 버티다가 견딜 수 없어 내지른 비명소리가 바람이나 빗소리처럼 들리던 곳. 불행이 돌멩이처럼 널려 있는 곳. 그래서 자성은 엄마는 죽고 아버지란 작자는 죽었으면 싶은 자신의 처지가 특별히 서글프지 않았다. 그냥 다들 그러니까 나도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엄마의 기일, 입술을 벌겋게 처바른 여자를 옆구리에 매단 아버지가 제사상에 올린 새우깡을 뜯어냈을 땐, 이 세상 따위 좀 그만 살고 싶어져서 열심히 달려들었다가 바스러진 새우깡 꼴로 가파른 계단에 무릎을 그러모았다. 눈두덩이는 퍼렇고 입가는 벌겋고 안 그래도 헤진 옷은 잘도 찢어져 입으나 마나. 한겨울에 그러고 있자니 어린 마음에도 얼마나 한심스럽던지. 울음도 안 나 멍하니 어둑한 골목만 쳐다봤다. 문득 엄마가 보고 싶었다. 죽은 엄마. 이런 동네에서, 저런 남자와 살면서 독하지도 못해 어린 자성을 끌어안고 울기밖에 못했던 바보 같은 여자종일 다리가 퉁퉁 붓도록 일하고 돌아오는 길에 새우깡 한 봉지를 사오곤 했다.

새우깡.

...우라질.

그제야 눈물이 퍽 터졌다. 엄마도 싫고 아버지도 싫고 새우깡도 싫고 무엇보다 제 자신이 싫었다. 울어도 달라지는 건 없는데 병신같이 질질 짜기나 하다니. 아까 제대로 맞아 차라리 죽어버리지. 죽어, 병신아. 죽으라고. 죽어. 죽어. 죽어. ...죽여줘. 저주가 기원으로 변하기까지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그런데.

-, 크흥, 꼬라지 한 번 볼 만 하다이.

박박 깎은 머리통이 불현듯 오른쪽에서 히죽거린다. 퉁퉁 부은 왼쪽 눈으로 겨우 들여다보니 아는 얼굴이었다. 말은 해본 적 없지만 같은 학교에 다니는, 판잣집 맨 끝집 정청. 중학생인데도 벌써 덩치가 커 고등학생과 싸워도 지지 않는다고 들었다. 들을 때마다 내심 부러웠다. 눈앞에서 보긴 처음인데 쌈 잘한다는 걸 알아 그런가 웬지 세 보이는 얼굴... ...에 누런 콧물이 달려 있다. ..... 쌈 잘해도 콧물은 흘리는구나...

-아 씨발, 초면에, , 인사가 그게 뭐냐? 얜 우리 모르잖아.

이번에는 왼쪽에서 쇳소리 같은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보기도 전에 알 것 같았다. 정청 동생 이중구. 성이 달라 씨만 다른가 했더니 배도 달랐다나. 정청 아버지랑 이중구 어머니랑 재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둘 다 바람 나 집 나가고 할머니랑 셋이 산다는.  아무튼 사생활이라곤 없는 동네니까. 그래도 우애는 좋은지 학주에게 나란히 맞는 걸 여러 번 봤다. 야구선수 출신인 학주에게 각목으로 맞으면서도 신음소리 한 번 없던 결기 어린 얼굴....에 저런 콧물은 없었는데.

-근가? 어야. 크흥. 우덜이 누구냐면 말여, 크흐흥.

-.... 풀던지 닦던지 씨발 드러 죽겠네.

-뭐시 드럽다고 지랄이여 씨벌, , 놈이. 아따 춥긴 춥다아. 크흐응. 오뎅 먹으러 안 갈라냐?

-오뎅은 씁, 얼어죽을. 쓰읍, 소주나 한 잔 빨자.

-할매 쇠주 건들지 말라, 크흥, 혔제!

-어이구 쓰으읍, 효자 나셨네 씨발.

거지같던 밤. 누런 콧물의 크흥과 쓰읍 이중주. 자성은 그렇게 그들을 만났다. 얼떨떨해 하는 자성을 반강제로 끌고 가선 진숙씨가 자기들한테 되게 잘해줬다며, 이제까진 저들하고 어울렸다가 예쁜 진숙씨 눈에서 눈물만 더 뺄라 먼발치에 있었는데 형이라고 부르라고. 더운 오뎅 국물을 쉼 없이 퍼주며 남의 엄마 이름을 함부로 불러 젖히던 그날부터 할머니가 돌아가셔 먼 친척이 있다는 부산으로 가기 전까지 삼 여년을 진짜 형처럼, 어느 때는 철없는 동생들처럼 함께 했다.

그래서 결코,

-이자성 이 씨바라. 그때 바로 부산으로 날라 오든가 기다리든가! 여수 와서 너 찾느라 얼마나 좆뱅이 친 줄 아냐? 끽해야 5년을 못 참고, 좆도 없는 새끼가 뭘 믿고 혼자 서울은 쳐 올라가서 고생은 좆대로 하고 니미... 이거 처 마른 것 봐오래 못 처먹어서 씨발... ....갔음 이 악물고 뭐라도 하든가. 겨우 깡패나 될 걸 병신 같은 새끼가... ..., 이자성. 내가, 씨발, 이대로 안 끝내촌구석 깡패새끼로 너 안 만든다고 내가! 알아, 이 개새끼야? 어!? 형님 말씀! 

결단코...

-아가리 안 닥치냐! 무거워 죽겄는디 등짝에서 옛날 야그는 하구 지랄이여, 지랄이!! 취할 때마다 이 지랄병 으이고, 나가 미친놈이다, 미친놈이여. 자성아. 이 시킨 나가 알아서 할라니께 느는 드가 쉬,

-서울, 씨발, 골드문인가 뭔가 먹어버리자고, ?!

-, 무겁다니께!!!

이렇게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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