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
*피지컬은 린원인데 감정선이 넘나 원린인 것..
*린이 선한 눈빛에 나도 모르게 중얼. 너.. 이런 애 아니잖아.. (요야!!)


-다시 한 번!!! 내 사람에게 털끝 하나라도 대보거라. 차라리 죽여달라 애원하게 될 것이니!!

서슬퍼런 기세에 사위가 쥐 죽은 듯 고요해진다. 김내관은 저도 모르게 목을 움츠렸다. 오랜 세월 모셨지만 저런 모습은 처음이다. 모든 것에 한 발 물러나 계시던 분이 어찌 저리... 얼이 빠져있던 김내관은 몽둥이가 바닥을 튀고 구르는 소리에 흠칫 정신을 차렸다. 앞서 가는 등이 오늘따라 크게 비쳤다.

**

-그 아이는 평옥에 있습니다.
-안다.

대답이 영 곱지 않다. 린은 슬쩍 옆을 돌아보고 조심히 말을 이었다.

-...그 아이가 다쳤습니다.
-....
-입술이 상해 피가
-알아.
-아신..다구요?

들었는지 보았는지 묻고 싶으나 더 돌아오는 답이 없어 린도 그만 입을 다문다. ..하기사. 들었든 보았든 그게 무에 중하랴. 모든 걸 쥐고도 아무 것도 갖지 못한 세자가 린 외에 처음 마음을 두었다. 그 마음을 해하려 했으니.. 아무리 저의 친형이라도 이번엔 쉬이.. 생각 중에 린은 쓰게 웃고 만다. 평생의 벗이며 믿을 수 있는 단 한 명의 신하. 세자는, 원은 늘 린을 그리 불렀다. 린이 그 이름을 얼마나 좋아하고 또 싫어하는지도 모른 채. ..언젠간 잃어야 할 이름이건만. 새삼 무거워진 것은 아마, 그 아이 때문일 테지. 내가 잃을 이름을, 내가 원하는 이름을 모두 가지게 될 지도 모르는 그 아이. ...나도 참 못났구나... 린이 다시 한 번 쓴웃음을 삼킬 때였다. 무릎 위로 작은 약통이 툭 던져진다. 

-발라.
-다친 건 그 아인데 왜 제게..
-..바보냐?

그래도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이다. 원은 길게 한숨을 쉬며 약통을 채갔다. 뚜껑을 열고 약을 덜어 손등에 부러 세게 문대자 그제야 제 상처를 알아보는 꼴에 복장이 뒤틀린다. ...한심한 놈.

-됐습니
-안 됐다.
-...별 거 아닙니
-별 거고.

그 아이를 험히 다루는 관졸을 말리다 스친 모양이다. 크지도 않은 작은 생채기인데 언제 그랬냐는 양 조심스러워져 있는 대로 미간을 찌푸리고.. ...이러시니 제 욕심이 분수를 모르는 것 아닙니까.. 린은 목까지 차오른 말을 익숙하게 눌렀다.

-정말 되었습니다.
-안 됐다고.
-...전하께 꾸지람 듣진 않으셨습니까.
-.....
-..송구합니
-좀!

밀치듯 놓는 손에 말이 멈춘다.

-내가 아니라 네가 옥에 갇혔다. 내가 아니라 네가 다쳤고. 그러니!

린은 크게 심호흡하는 원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니 하지 말라구, 좀.
-....저하.
-아바마마께서.
-.....
-...아바마마께서 너랑 소화 그 아이 둘 중 하나만 내주겠다 하셨어. 난 그 자리에서 소화를 내달라 했고. 이래도 할 거냐? 그 '송구합니다.'?

침묵이 길게 가라앉는다. 원은 꿋꿋이 린을 직시했다. 미련히도 무던한 눈동자에 실망이나 원망이나 무엇이 서리든 상관없었다. 저 미소만 아니면.

-왜 웃어. 제대로 듣고 웃는 거야?
-들었습니다.
-내가 널 여기 둔다 했다고.
-그러셨어요. 잘하신 일이구요.
-.....
-이제 송구하다 해도 됩니까?

원은 잠시 할 말을 잃는다. 왕은 자식을 위해 뙤약볕 아래 뼈가 삭는 세상 아비들과는 다른 자였다. 할 수만 있다면 나눠준 피와 살도 거둬가고 싶을 테지. 해서 둘 중 하나라는 고약한 제안을 신명나게 들이민 것이다. 택한 쪽을 끝내 버리게 하려고. 어찌나 노골적이든지 철든 이후 아비 앞에서 꾸며댔던 순종적인 낯이 순간 벗겨질 뻔 하였다. ..그렇게 된 일이었다. 허나 그렇다고, 그런 이유라고 말해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싫었다. 제 아비가 그런 자라고, 네 짐작보다 더 나를 끔찍해하는 아비라고, 내가 그런 이의 자식이라고... 다른 이도 아닌 린에게 그 치부를 대놓고 내보이느니 린이 상처받는 쪽을 택했다. 그래도 떠나지는 못할 테니까. 정녕 그 아비의 그 자식다웠다. ..헌데.. 뭐냔 말이다. 이 멍청이는.

-전부터 궁금했는데 넌 원래 배알이 없냐?
-제 친형이 벌인 일입니다. 한 두 번도 아니구요. 헌데 여기 계시니 저하가 하실 말씀은 아니지요.
-넌 니 형이 아니야.
-그래도 제 형입니다. 그래서 참으시는 거 아닙니까.
-....없네. 배알.

맥풀린 목소리에 작게 미소가 번진다. 이 정도면 되었다. 언제고 저를 먼저 찾지 않게 되어도, 저 때문에 제 형의 만행을 참지 않게 되어도, 작은 생채기에 눈살을 찌푸리지 않게 되어도, 이 모든 것이 다른 이에게 옮겨가게 되어도 지금이면 그 나중은 어떻게든 될 것이다. 그 나중은...

-그래서. 아무 것도 안 묻겠다고.
-..저하께서도 그러셨습니다. 제가 저하의 말을 쏜 일. 그때 이후로 다시 묻지 않으셨어요.
-그런 일이 있었나.
-왜 묻지 않으십니까.

벽에 등을 기댄 원이 허공에 피식 웃는다.

-그땐 화가 났는데, 알잖아. 내가 개국 이래 가장 총명한 왕세잔 거. 뻔하지. 날 위해서거나 나 때문이거나. 네가 나 아님 어디 새 한 마리 허투루 죽일 인사냐.
-...아닙니다.
-..와. 잘했다더니 순 뻥이었네. 여기 둔다고 아주 반항이
-저하 때문이 아니에요. 활 쏜 거. 여기 있는 거. 다 제가 선택한 겁니다. ...허니 혹여 자책같은 건 하지 마십시요. 안 어울리십니다.

원은 두 손을 꽉 맞잡는다. 이런 놈이다. 이 차가운 옥사에 내버려두겠단 소릴 듣고는 이런 말이나 하는 놈이다. 잡종세자를 따른다 공연히 손가락질 받고 저를 돕다가 어마마마께 뺨이나 얻어맞고 명망높은 수사공의 삼남이 밤낮없이 뒤치다꺼리나 하며... 다 저같이 속없는 줄 아나. 자책이라니. 누가. 혹여 상처받고 멀어지기라도 하면 네가 그리 아끼는 여동생 단이라도 이용할 내가? 손등에 생채기를 낸 군졸을 매타작하며 네 형과 내 아비를 떠올린 내가. ..세상천지 너같은 사람이, 더군다나 나일 리는 없다는 것을 되도록 오래 몰랐으면 좋겠다. 네가 아는, 어딘지 따뜻하고 인간적인 세자 같은 건 어디에도 없다는 걸 가능한 한 오래, 너만은.

-그만 가세요. 날이 찹니다.
-...이따.
-감기 드십니다.
-잔소리 그만해라.
-저하.
-춥다.
-그러니 그만
-그러니까 더 있다 간다고. 이 추운데 너 혼자 두고.
-.....
-때 되면 잡아도 갈 거니까 그냥 있어.
-......
-...있자, 그냥. 지금은.

눈 감은 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린도 등을 기댄다.
성그런 달빛이 나란히 앉은 머리 위로 무심히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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